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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마산 2024.10.31 11:17

그물의 미학

 
저자 이규준 바오로 시인/ 가톨릭문인회

인간이 그물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원시인들이 정착하여 하천이나 강가에서 수렵 이나 어로 생활을 시작하면서 포획과 운반을 위한 도구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절박한 삶의 수단은 때로는 불면의 밤과 숱한 시행착오를 요구했을 것이며, 그러한 고통의 결과, 그물이라는 산물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돌칼, 돌도끼를 사용하던 그 당시로서는 아마 불 다음으로 위대한 발명품이었으리라. 짐승이나 물고기를 산 채로 잡을 수 있 었고, 산이나 들에서 채취한 잎이나 열매를 한꺼번에 담아 운반할 수가 있었다.

 

인류의 오랜 발명품인 그물은 현대에 와서도 만드는 재료 및 형태가 고급화되고 다양화되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목적이나 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둥글게 둘러쳐진 울타리 너머로 물체가 도망가거나 흘러내리지 못하게 가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호하고 운반하며 보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물은 실이나 끈, 철사 등의 올을 얼기설기 짠 뒤 각 교차점을 고리로 묶거나 매듭을 지어 그물코가 되도록 만든 다. 그물코의 모양과 크기는 다양하며, 올의 굵기도 가늘고 부드러운 것부터 굵고 거친 소재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그 물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가두고 옥죄어 자유를 억압하기도 하지만, 외 부의 침입자로부터 영역을 보호함으로써 삶의 터전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벼 논 옆에 햇볕이 잘 드는 산기슭에 배나무 과수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하얗게 밝히던 배꽃이 눈처럼 떨어지고, 10월 중순쯤 되면 과일의 크기가 야구공보다 더 커지 면서 유년의 푸른빛에서 노년의 황금빛으로 변하게 된다. 탐스럽게 무르익어 가는 과실 깊숙이 숨어 홀로 주체하지 못 하는 향긋하고 달콤한 향기는 밖으로 넘쳐흐른다. 과육 속에 감추어진 씨앗을 세상 곳곳에 퍼뜨려 세대를 이어가려는 본능일 것이다. 이런 향기에 이끌려 먼 곳에서 날아온 까치는 연신 배를 쪼아 댄다. 까치에게 허락된 먹이의 양을 초과 하게 되면, 사람은 불가피하게 그물을 이용해 과수원 전체에 방조망을 친다. 이렇게 되면 까치는 더 이상 길조가 아닌 불청객이 되고 만다. 이때의 그물은 가두어 자유를 구속하는 감옥이 아니다. 까치의 침입을 막아 배를 보호하며, 햇빛 과 온기, 바람은 그대로 받아들여 열매를 살찌우는 영양분이 된다. 이처럼 그물은 구속과 허용의 이중적 기능을 동시 에 수행한다.

 

사람은 누구나 유무형의 그물을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그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깊은 산 속에 내리는 새벽이슬을 사슴이 마시면 보혈이 되지만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는 이치이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물고기를 잡는 구속의 그물을 던졌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부터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복음이라는 거 대하고 고귀한 영생의 그물을 세상에 던졌다.

 

나는 그동안 가슴 속 깊이 감춰왔던 나만의 그물을 남몰래 꺼내 본다. 작고 보잘것 없으며 낡은 그물, 그렇지만 여 태껏 나의 숨통을 스스로 옥죄는 그런 그물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나와 식솔들의 생명줄을 지키기 위해 쉼 없이 던지고 끌어 올렸던 그물, 이제는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바로 옆집의 이웃을 향해 복음의 그물을 던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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