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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0 08:26

자아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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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성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 봉헌

    인간의 영혼과 궁극적인 실재의 본질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들과 씨름한 중세기 유다 철학자들이나 하밧 하시디즘의 스승들과는 다르게, 또 영적인 우주의 신성한 구조를 탐색한 카발리스트들이나 역사의 최종 목적에 대하여 사색한 신학자들과도 다르게 키르케고르와 코츠커는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렸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실존의 틀과 방향에 대하여 곰곰 생각하였다. 어떻게 인간은 그를 얽어매고 있는 모든 혼돈으로부터 벗어나 제 스스로의 얼개를 세울 것인가? 다른 하시드 스승들은 자기 제자들에게 과도한 사색을 삼가라고 충고하였다. 신앙에 대한 문제를 이리저리 캐묻지 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단순한 산문으로 말했다. 과도한 사색은 의혹의 어두운 골방으로 인도할 뿐이라고. 코츠커는 질문하는 것과 사색하는 것을 권장, 격려하였다. 그는 의심과 심사 숙고가 엉뚱한 길로 사람을 이끌고 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들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있어 단순성이란 위장된 부정직이요 자기-기만의 속임수에 불과했다. 문제는 하느님을 신뢰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인간의 하느님 용납을 신뢰하느냐 않느냐였다. "지혜가 않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전도서 1:18). 코츠커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너를 괴롭게는 하지만 그것이 너의 아는 것을 많게 한다," 키르케고르나 코츠커에게 있어 자기-훈련은 종교적인 완전성에 이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전제였다. 인간은 자신의 동기를 면밀히 조사하고 자신의 의도를 순수하게 다듬고 언제나 자아의 횡포를 견제해야만 했다. 자기-이해에 이르는 첫걸음은 자기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렙 멘들이 자기-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 첫 번째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시대에 이르러 자기-훈련이 하나의 사장된 기술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훈련을 코츠커에서의 하시드 교육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삼았다. 키르케고르와 코츠커는 진실의 문제를 그것이 자기-이해와 관련이 있는 한에서만 다루었다. 자기를 속이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었으므로 그만큼 그들이 문제삼은 것은 다루기가 까다로왔다. 마음이 궤변적이 될수록 자기-기만은 심화된다. 내면의 삶은 거칠고 헤어날 수 없는 미궁이 된다. 누가 자신의 동기들을, 자신의 정직성을 믿을 수 있는가? 그 누가 하느님에게 경배를 하면서, 실은 우상을 섬기거나 자기 자신의 자아를 섬기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인간의 영혼 안에는 진실성의 구렁이 있고 그것은 다만 진리의 영에 의해서만 다리놓여질 수 있다. 어떤 문제들은 타협을 용납하지 못한다. 신앙과 위선은 최대의 상극이다. 종교적인 삶을 산다고 하면서 속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느님을 핑계의 구실로 삼거나 겉치레로 경건을 꾸민다는 것은 불경죄이다. 하느님은 최고로 중요한 분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분이다. 키르케고르와 코츠커는 저마다 자기의 방법대로 무엇이 실존을 위태롭게 하는지, 하느님께 대한 진지한 태도 속에 감추어져 있는 기만성이 무엇인지를 밝혀내었다. 그들은 하느님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무엇보다도 정직성(intergrity)이라고 제시하였다. 코츠커의 한 제자가 자기 스승에게, 하느님께 예배드릴 때마다 자신의 교만한 모습을 보지 않고 예배드려 본 적이 없다고 호소하였다. "이런 방해를 받지 않게 하는 기도 방법이 있을까요?" 하고 그가 물었다. "너는 숲속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이리를 만난 적이 있느냐?" "네, 있습니다." "그 순간 네 마음은 어땠느냐?" "무서웠습니다. 그저 무서울 뿐이었죠. 그리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겠지. 너는 그 순간 아무런 자의식도 없이,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다만 무서워했다. 하느님 섬기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해." 코츠커는 제자들에게 꾸준히 자기-기만을 피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에 자신을 일치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순간 그 이루어진 일과 이룬 인격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인격을 떠나 말과 행동이 있을 수 없으니만큼, 말과 행동으로부터 인격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사람도 그의 삶으로부터, 모든 혼란과 추함을 미리 제거하고 헛된 것에 빠지거나 자기-집착에 몰입된 가능성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정직한 감정이나 순수한 확신에 처하는 순간까지 무시되거나 억압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코츠커는 사색의 목적이 인격의 내부에 잠재하여 있는 이원론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정직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 없이 자기-이해에 도달할 수는 없다. 자기-성찰은 진리를 얻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진실하지 못한 것까지도 진지하게 신뢰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코츠커는 자칫 행위가 없는 영혼의 내적인 상태를 자장으로 여겨 교만할 수도 있는 정적주의자들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상으로 삼은 것은 정적 속에 살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지상주의적인 삶에 혐오감을 갖도록 설득하여 자아를 밝히는 일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었다. 네 자신을 깨우쳐 주거라!


미 사 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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