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발견한 동화책 한 권으로 인해 나는 가장 힘든 시기에 마음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아름다운 책이던지 별로 바람직하지 않게 여겼던 책 전체를 베껴 볼 생각을 다 하였습니다. 또 그대 앞에서 이 커다란 책을 펼치고 낮고 그러나 명랑한 목소리로 읽어주고 싶은 욕심이기도 합니다.
나딘 보룅코슴 (1960년생 프랑스 탄생)의 『큰 늑대 작은 늑대의 별이 된 나뭇잎』입니다.
나무 꼭대기에 작은 나뭇잎이 있었습니다.
화창한 봄날, 나뭇잎은 곱고 부드러운 연두색이었습니다.
작은 늑대는 그 나뭇잎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작은 늑대가 부탁했습니다.
“큰 늑대야, 저 나뭇잎을 따다 줘. 나, 저 나뭇잎을 먹어 보고 싶어.”
큰 늑대가 대답하였습니다.
“기다려 봐, 때가 되면 떨어질 거야.”
여름이 되자, 작은 나뭇잎은 짙은 초록색을 띠며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작은 늑대는 그 나뭇잎을 거울로 쓰고 싶었습니다.
작은 늑대가 부탁했습니다.
“큰 늑대야, 저 나뭇잎을 따다 줘. 저기에 얼굴을 비춰 보고 싶어.”
큰 늑대가 대답했습니다.
“기다려 봐, 언젠가는 떨어질 테니.”
가을이 오자, 작은 나뭇잎은 갈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어찌나 고와 보이던지, 작은 늑대는 나뭇잎을 볼에 대 보고 싶었습니다.
작은 늑대가 부탁했습니다.
“큰 늑대야, 저 나뭇잎을 따다 줘, 꼭 만져 보고 싶어.”
큰 늑대가 대답했습니다.
“기다려 봐, 곧 떨어질 거야.”
겨울에도 작은 나뭇잎은 여전히 그 자리에,
헐벗은 나무 위에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나뭇잎은 아름다운 진회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작은 늑대는 이제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큰 늑대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쭉 켜더니 말했습니다.
“내가 나뭇잎을 따다 줄게.”
그냥 별 이유는 없었습니다.
작은 늑대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나무를 타기가 쉬웠습니다.
밟고 올라서 만한 큰 가지들이 있었으니까요.
작은 늑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나무 위쪽에는 작은 가지밖에 없어서
큰 늑대가 발을 디딜 때마다 뚝뚝 부러졌습니다.
작은 늑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웃음은 사라졌습니다.
나뭇잎 한 장 때문에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작은 늑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높은 곳에는 발을 디딜 만한
가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큰 늑대는 눈이 묻어 미끌미끌한
나무줄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마터면 큰 늑대는 나무에서 떨어질 뻔했습니다.
작은 늑대는 나무 밑에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럭 겁이 났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나뭇잎 한 장 때문에
이런 일까지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때 큰 늑대가 떨어지지 않는 작은 나뭇잎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손가락 끝이 나뭇잎에 닿았습니다. 가장자리에 살짝......
나뭇잎이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연약해서,
큰 늑대는 몸속 깊은 곳이 떨려 왔습니다.
정말 작은 늑대를 위한 나뭇잎이었습니다.
그 나뭇잎을 꼭 따다 주고 싶었습니다.
큰 늑대는 나뭇잎을 잡았습니다.
작은 나뭇잎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큰 늑대의 손가락 사이에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저물어 가는 햇빛 속에서 붉은빛, 황금빛 조각들이
나무 밑에 있는 작은 늑대에게로 천천히 떨어졌습니다.
작은 늑대는 별처럼 고운 나뭇잎 조각들이
쏟아지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별들이 작은 늑대의 코앞을 지나갔습니다.
작은 늑대는 작은 별 하나를 혀끝으로 맛보고
얼마나 부드러운지 알았습니다.
작은 별 하나가 눈앞을 스쳐 지나갈 때
얼마나 반짝이는지 보았습니다.
작은 별 하나가 볼을 타고 미끄러질 때
얼마나 고운지 느꼈습니다.
작은 늑대는 한동안 바르르 떨었습니다.
그리고 별들은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갔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늑대는 눈을 들었습니다.
큰 늑대가 나무 위에서 꼼짝 않고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큰 늑대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큰 늑대가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눈 덮인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작은 늑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똑똑 부러지는 작은 가지들을 밟고 내려왔습니다.
작은 늑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는 튼튼한 큰 가지들을 딛고 내려왔습니다.
큰 늑대의 발이 땅에 닿았습니다.
작은 늑대는 큰 늑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예쁜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어.”
작은 늑대는 빙긋 웃었습니다.
큰 늑대도 씩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애쓸 가치가 있었습니다.
동화이기는 하나 한 편의 시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이 듭니다. 다시 옮기다 보니 가슴이 떨려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정말 애쓸 가치가 있습니다.
작은 늑대는 호기심이 많습니다. 나뭇잎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거듭 큰 늑대에게 따다 달라고 부탁하지만 큰 늑대는 기다리라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오빠 한 번 믿어 봐!’ 이런 허풍도 나올만한데 큰 늑대는 작은 늑대의 반짝이는 눈만을 봅니다. 작은 늑대가 큰 늑대에게 삐쳐서 기다리지 않았다면 여름날의 반짝거림 가을날의 부드러움 겨울날의 아름다운 진회색의 나뭇잎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겨울 어느 날 큰 늑대는 단지 작은 늑대의 반짝이는 눈빛을 찾아주고 싶어서 위험한 나무에 오릅니다. 그때서야 작은 늑대는 알게 됩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나뭇잎 보다 큰 늑대의 가치가 얼마나 더 큰 것인가를......
큰 늑대가 나뭇잎을 만지는 순간 나뭇잎은 부셔져 내립니다. 아, 큰 늑대의 그 당황스러운 마음 그 애절한 마음이 그대로 내 마음으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나뭇잎은 더 이상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작은 늑대는 큰 늑대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이 어찌나 큰 것인지 부셔져 내려오는 나뭇잎에서 사랑의 모든 것을 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예쁜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어.”
그 말을 들은 큰 늑대는 씩 웃을 뿐입니다.
이 동화는 사랑과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나무 꼭대기의 꿈을 따고 싶어 하는 작은 늑대에게 현실을 벗어난 꿈만 꾸는 사랑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 작은 늑대를 위해 큰 늑대는 기어이 나무에 오릅니다. 자칫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작은 늑대가 원하는 꼭 그 하나를 위해서 기지개를 z켭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작 이루어지게 한 것은 곁에 있던 몰랐던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얻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늑대가 그 것을 알았을 때 큰 늑대는 내려옵니다. 흔들리는 작은 가지에서 굵은 가지로 그리고 나무의 기둥을 타고 비로소 땅에 발을 딛게 됩니다. 현실의 땅에.....
이후 큰 늑대와 작은 늑대는 이 소중한 사랑의 경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헤어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내 지나온 사랑은 모두 거짓입니다. 잘못된 사랑입니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지 서로는 모릅니다. 폼 재기를 좋아했고 부풀리기를 좋아했고 멀리 있는 별을 사랑했으며 나약하기 짝이 없으며 죽으라고 서로 사랑받기만을 원하면서도 조그만 일에도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랑은 정말 애쓸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은 그런 것인 줄... 동화 속에서 길을 찾습니다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