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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봉원 야고보 신부(교구 총대리)

 

 

 

 

 

 

 

 

 

 

 

 

 

 

 

 

 

 

 

 

 

 

 

 

 

 

 

 

 

11월은 우리보다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기억하는 위령 성월이다.

특별히 둘째 날은 우리가 ‘위령의 날’로 지내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묘지를 참배하며 기도한다. 그것은 연옥의 영혼들이 우리들의 희생과 정성으로 빨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며, 또 인간의 삶과 죽음이 주님의 손에 달렸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천주교 묘지 입구에 ‘Hodie mihi Cras tibi’라고 하는 라틴어 문구를 써 붙인 곳이 있었다. ‘호디에 미히, 끄라스 띠비’라고 읽는데, 그 말은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인 ‘누구나 다 죽는다.’라는 사실과 가장 불확실한 진리인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라는 사실을 방문자들이 생각하면서 죽음을 잘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사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살아간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만은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다. 그러다 보면 죽는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죽음은 결코 인생의 저 먼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눈을 감고 숨을 조금만 멈추어 보라. 바로 거기에 죽음의 그늘이 있다. 차를 타고 도로를 질주해 보라. 거기에도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천주교의 오래된 신앙 서적인 준주성범(遵主聖範 Imitatio Christi)이라는 책은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구는 칼에 맞아 죽고, 누구는 높은 데서 떨어져 죽고, 누구는 먹다가 죽는다. 또는 불에 타 죽고, 병에 걸려 죽고, 강도에게 끌려가 죽는다. 이처럼 사람은 죽음으로 끝을 맺으니, 사람의 생명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찰나의 순간에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는다. 그렇다고 살아남은 자가 죽음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잠시 죽음이 그를 비켜 갔을 뿐이다. 죽음은 언젠가 그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는 일에만 급급하며 죽음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이며, 또 죽음 후에 다른 삶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는 동안의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며, 모든 이에게 잊힐 것을 생각하니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예수님은 죽음에서 되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요한 11,25-26 참조) 하셨다. 사도 바오로도 2코린 5,1에서 우리의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고 하면서,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삶으로 옮아가는 것임을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동전의 양면처럼 늘 우리와 함께하는 죽음을 언제든지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종 직전의 사람들이 말하는 공통된 한 가지는 “살아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니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라는 보고서가 있었다. 그렇다. 지금 죽을 수 있는 자야말로 인생을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 온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핑계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았다. 11월 한 달이라도 먼저 떠나가신 조상, 부모와 형제, 친지와 은인, 그리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의 죽음 준비도 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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