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44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허인백, 김종륜, 이양등을 비롯 박해 때마다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던 곳

경주 관아와 옥터는 1815년 을해박해와 1860년 경신박해, 1868년 무진박해 등 역대 박해 때마다 천주교 신자들이 사학죄인으로 몰려 관장 앞에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던 곳이며,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허인백(許仁伯, 1822~1868, 야고보), 김종륜(金宗倫, 1819~1868, 루카), 이양등(李陽登, ?~1868, 베드로)이 울산 장대벌에서 군문효수되기 전 체포되어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고 천주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던 곳이다.
경주 동헌은 조선 시대의 경주부(慶州府, 종2품의 府尹이 관장인 아문) 관아로 한때는 경주 박물관으로 사용된 적도 있으며 현재는 경주 문화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1814년(순조 14년) 전국적으로 큰 비와 흉년으로 식량이 떨어져 고통 받을 때에 당시 배교자 전치수에 의하여 관헌들이 청송군 노래산 등을 습격하여 고성대 요셉 등을 잡아 경주 감옥에 가두어 고문하던 곳이다.
1860년 경신박해가 일어난 뒤, 허인백 야고보는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무수히 매를 맞고 언양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천주교 신자임을 떳떳하게 고백하였다. 그리고 옥에 갇혀 50여 일을 지낸 뒤 경주로 이송되었으며, 이곳에서도 굳게 신앙을 증거한 뒤 8개월을 옥에 갇혀 지내야만 하였다. 그러다가 박해를 중단하라는 임금의 명에 따라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2년 뒤인 1868년에는 포졸들이 죽령 교우촌을 찾아내게 되었고, 허 야고보는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어 경주로 끌려가게 되었다. 경주 진영에 이르자, 곧 문초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주교 신자임을 고백하였을 뿐 천주교 서적이 있는 곳을 대거나 다른 신자를 밀고하지 않았다. 그러자 관장은 화가 나서 혹독한 형벌을 가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경주 진영에서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음에도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 하였다.
이들 하느님의 종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는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어 다시 문초와 형벌을 당하고 신앙을 증거한 뒤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 다음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로 끌려 나가 함께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68년 9월 14일(음 7월 28일)이었다. 그들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朴召史)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현재 경주 문화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경주 동헌 중앙 건물은 정면 8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고 동쪽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서쪽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다. 경주 문화원 정원에는 초석(礎石), 장대석(長臺石), 연화대석(蓮花臺石) 등의 석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경주 옥터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방명사 아파트 내에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조성으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 경주 옥터 발굴
경주시 동부동 일대는 조선 시대의 관아가 있던 자리인데, 서부동 옛날 문화중고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우방명사 마을 공사 중에 당시 감옥터가 발굴되었다. 옥터는 현재 우방명사 마을 아파트 정문에서 약 100m 진입하면 좌측 110동 건물 앞쪽 원형 화단 자리이다. 발굴 결과 타원형의 석축 담장지 내에 3동의 건물지와 담장 외부를 둘러싼 수구가 동편 담장 외곽에서 확인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경주읍전도》에 표현되어 있는 옥과 그 위치 및 형태가 일치한다.

▒ 경주읍성(慶州邑城)
경주시는 경주읍성을 연차적으로 옛 모습으로 복원 정비, 관광 자원화할 방침이다. 오는 2050년까지 사업비 605억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동·북문 복원, 성내 유적 정비, 경관 및 주변 환경을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경주는 신라 이래 지방 통치의 중심지로서 읍성이 존재하였으리라 추측되나, 이 읍성의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다.
둘레 1,222m. 사적 제96호. 현재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지고 일부만 남아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조선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집경전(集慶殿)과 관아 그리고 우물이 80여 개가 있었다. 그리고 동서남북에 향일문(向日門)·망미문(望美門)·징례문(徵禮門)·공진문(拱辰門)이 각각 있었고,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해자(垓字)도 갖추고 있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사용하여 일본군을 물리쳤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대부분 헐리고 지금은 동부동에 90m 가량이 옛 모습대로 남아 있다. 경주 문화원은 옛 동헌이었던 자리로 경주읍성의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다.

◆ 최양업 토마 신부님의 편지
다음 편지는 경신박해(1860) 때 언양지역 상황에 대해 최양업 신부님이 쓰신 서한 중 경주 감옥에 대한 내용이다.

"예수 마리아 요셉
죽림굴에서 1860년 9월 3일 리보아 신부와 르그레조아 신부에게
공경하올 신부님들
먼저 두 분 신부님들에게 공동 편지를 보내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이 편지를 두 분뿐만 아니라 모든 신부님들에게 보내야 할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박해의 풍파로 한 모퉁이에 갇혀서 신자들과 아무 연락도 못하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달 전부터 주교님과 다른 신부님들과도 소식이 끊어져 그들의 생사도 모릅니다. 이 편지도 중국에까지 도착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박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중략) 열심한 여신자가 하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쳐 천주교에 나오게 인도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노파는 체포되어 용맹히 신앙을 증거한 후 혹독한 매를 맞고 순교하였습니다. 10명이 경주 감옥에 갇혀 있는데 3명은 문초를 당할 때 용감히 신앙을 증거하고, 지금까지 감옥에서 고초와 굶주림과 병고로 고생하며 함구합니다. 그들 중 16세 된 소년이 있는데, 옥사장에게 간청하여 아버지와 같이 형장에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하략)

◆ 최양업 신부의 열아홉 번째 편지 ← 클릭하면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  순교자

◆ 복자 이양등 베드로 ( ? ∼1868년)  
이양등 베드로는 경상도 울산의 죽령 교우촌(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회장이었다. 본래 성품이 선량하였던 그는 꿀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는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죽령 교우촌으로 이주해 온 허인백(야고보)과 김종륜(루가)을 만나 서로 권면해 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2년 뒤인 1868년 포졸들이 마침내 죽령 교우촌을 찾아내게 되었고, 베드로는 그곳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는 몸이 되었다. 그는 경주 진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자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어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병영동)로 끌려 나가 허인백, 김종륜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 복자 김종륜 루가(1819∼1868년)  
김종륜 루가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충청도 공주에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경주요, 족보 이름은 ‘경희’(敬熙)이다. 루가는 평소에 특히 화목함을 강조하였고, 어느 누구와도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다.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부모를 모시고 경상도 상주 멍에목(현 경북 문경군 동로면 명전리)으로 피신하였다. 다시 언양 간월(현 경북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을 거쳐 울산 죽령(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교우촌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죽령 교우촌에서 그는 이양등(베드로) 회장과 허인백(야고보)을 만나 서로 권면해 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8년에는 그는 그곳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는 몸이 되었다. 그는 경주 진영에서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어 루가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어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병영동)로 끌려 나가 이양등 회장과 허인백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 복자 허인백 야고보(1822∼1868년)  
허인백 야고보는 1822년 경상도 김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언양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다가 25세 때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 입교하였으며, 이후로는 아주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여 교우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아내 박조이와 자식들에게도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정결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남매처럼 살았으며, 고신극기와 애긍에 힘써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을 많이 도와 주었다.
1860년 경신박해가 일어난 뒤 그는 체포되어 무수히 매를 맞고 언양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천주교 신자임을 떳떳하게 고백하였다. 옥에 갇혀 50여 일을 지낸 뒤 경주로 이송되었으며, 8개월간 옥에 갇혀 지내다 박해를 중단하라는 임금의 명에 따라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그는 울산의 죽령(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중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양등 회장과 김종륜을 만나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고, 나무 그릇을 만들어 팔아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는 묵상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주 순교 원의를 드러내곤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2년 뒤인 1868년에 죽령 교우촌에서 체포되어 경주로 끌려가게 되었다. 경주 진영에서 문초 후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곳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병영동)로 끌려 나가 이양등 회장과 김종륜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아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관아 터] 경상북도 경주시 중앙로 67-12 (동부동 159-3) 경주문화원 자리
67-12, Jungang-ro, Gyeongju-si, Gyeongsangbuk-do
[옥 터] 경상북도 경주시 북성로 59 (111동 우측 꽃밭)
59, Bukseong-ro, Gyeongju-si, Gyeongsangbuk-do 
지리좌표[경주 관아 터] 북위 35°50′76.0″동경 129°12′62.5″
[경주 옥터] 북위 35°50′89.7″동경 129°12′55.9″ 
연락처성건 성당 (054) 749-8900 FAX (054) 749-1673  
홈페이지없음 
미사시간[성건 성당]
평일 : (수금) 오전 10:00 (화목) 오후 7:30
주일 : 오전 6:30, 10:00, 오후 7:30 (토) 오후 4:30  
교통편[승용차] 경주 시내 경주 법원과 경주여중 사이에 있는 경주문화원 자리가 경주 진영이 있던 관아 터이다. 경주 옥 터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방명사 아파트 자리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8 성지순례 안내 - 원주교구 풍수원 성당 이상훈(요셉) 2019.08.03 336
77 전국 성지 순례 지도 이상훈(요셉) 2019.08.12 207
76 [ 한사람의생명 ]관련하여, 함께 기도바랍니다 . . file 김준(그레고리오) 2019.08.27 115
75 성지순례 안내 - 안동교구 문경 마원 박상근 마티아 묘 이상훈(요셉) 2019.08.28 291
74 성지순례 안내 - 원주교구 풍수원 성당 이상훈(요셉) 2019.10.21 345
73 성지순례 안내 - 전주교구 성 김대건 신부가 첫 발을 내디딘 축복의 땅 나바위 이상훈(요셉) 2019.10.26 148
72 프란치스코 교황님 일본 방문 file 이상훈(요셉) 2019.11.24 131
71 성지순례 안내 - 전주교구 - 완주 되재 성당/수청리 성당/고산 성당 이상훈(요셉) 2019.12.17 583
70 [이스라엘 이야기] 돌무화과나무 이상훈(요셉) 2019.12.19 341
69 성지순례 안내 - 대구대 교구 - 경주 진목정 성지 이상훈(요셉) 2020.01.17 439
» 성지순례 안내 - 대구대 교구 : 경주 관아와 옥 터 이상훈(요셉) 2020.01.17 448
67 산책하다가 천주교 입문... 하느님 죄송합니다 이상훈(요셉) 2020.02.10 207
66 성지순례 안내 - 대구대교구 - 가실 성당 이상훈(요셉) 2020.02.12 267
65 성지순례 안내 - 대구대교구 - 신나무골 이상훈(요셉) 2020.02.12 239
64 꼭 가보셔야 할 곳 -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이상훈(요셉) 2020.02.12 308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Next
/ 27
미 사 시 간
구분 남지 부곡
   
19:30  
10:00  
19:30
10:00
3월~9월(하절기)
20:00
10월~2월(동절기)
19:00
주일 10:30  

50357 창녕군 남지읍 동포로 18 남지성당
전화 : 055-526-2268 , 팩 스 : 055-526-2262

Copyright (C) 2020 Diocese of Masan. All rights reserved.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