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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이제 대림절 입니다.

제대 위에 네 개의 초가 켜지는데 이 네 개의 초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앞으로 4주 후에 누가 오십니까?

 

유대인은 메시아를 사천년이나 기다렸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막상 오고 나니까 죽여 버렸어요.

신약의 백성인 우리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잘 모셔야지요.

제대 위의 초 네 개가 다 켜지면 성탄절입니다.

 

피정강론을 다니다보면 피정주제의 70%정도는 본당신부님이 정해줘요.

강론원고를 열심히 준비해 가지만 어떤 때는 주제강론은 열어보지도 못하고

하루 피정이 끝납니다.

떠날 때 거기 신부님한테 미안해서

“신부님, 미안해, 사실은 준비해 가지고 왔는데 오늘 그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했네~”

그러면 대부분 본당신부님들은

“신부님, 피정 전에 혹시 우리 본당에 대해 듣고 오셨습니까? 저도 사제관에서

신부님 피정 다 들었는데 어쩌면 우리 본당에 맞는 이야기만 골라서 해 주십니까?

 감사합니다.“차 타고 오면서 “아, 다행이다...성령께서 오늘 내 입을 기지고 노셨구나!‘

 

사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사목을 해야겠다~’

나름대로 지혜를 짜서 해 보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부서진 게 더 잘 되었어요.

그때서야 ‘아, 이것은 하느님이 만드셨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계산은 인간의 계산과는 달라요.

세법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요.

 

종교인들은 늘 자신의 계산대로 생각대로 삽니다.

내 양심의 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보니 별로 득이 없다~

하느님께 받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신앙인들은 성서의 가르침대로, 하느님의 목소리 듣고 삽니다.

신앙과 은총은 계산하면서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도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를 만듭니다.

이렇게 하느님 앞에서 계산하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 이런 사람들은 입으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쁨이 없습니다.

두 번째, 이런 사람들은 성당에 나가도 외롭습니다.

세 번째, 이런 사람들은 세월이 갈수록 삶이 점점 더 고달픕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이거예요

 

여러분, 누군가를 가슴 졸이며 기다려 본적이 있습니까>?

또 그 만남을 위해서 애절하게 준비하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부산성당에 피정을 간적이 있는데 어느 자매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테입으로만 10여년을 신부님 목소리를 들었는데 신부님이 우리 본당에 오신다고 해서

저는 구일기도를 마치고 오늘을 너무너무 기다렸습니다. 어제는 신부님 만나는 설레임으로

잠을 한 숨 못잤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아, 이렇게 사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해외피정을 나가보면 이런 말을 듣습니다.

“어려울 때 신부님 강론테입이 참으로 힘이 되었습니다”

“자살을 시도히려다 누군가 전해준 신부님의 복사된 강의를 듣고 새 삶을 찾고

신부님 만나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누군가를 가슴 조이게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오늘 성서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신 ‘때’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도 그분의 목소리를 전하는 때가 있습니다.

 

맑고 깨끗한 라디오를 들으려면 주파수가 맞아야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주파수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네 가지의 주파수를 통해서 메시지를 주십니다.

첫 번째, 양심이라는 주파수를 통해 이야기하십니다.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퇴색합니다.

양심 없는 사람들은 변질된 양심을 자기의 잣대로 판단하기에

종교의 윤리적인 측면이 퇴색합니다

 

두 번째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주파수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모릅니다.

 

세 번째는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건, 물질과 나 와의 사건, 물질과 병고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하느님은 때로 당대에 자식을 치면서 부모를 회개시키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어야 됩니다.

 

네 번째,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 가운데에는 놀아야 할 때,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신학생 가운데 신부 못되는 사람은 남들이 놀 때 거룩한척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 등산할 때 자기 혼자 책상에서 공부합니다.

그 신학생 공부는 1등 할줄 몰라도

교수 신부들이 판단할 때는 '저건 아니다 사제감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지요.

놀때는 죽을 힘을 다해서 놀고, 웃어야 할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전도서 말씀대로 울어야 됩니다. 반대가 되었을 때는 잘못된 인생입니다

 

사람은 지금 이순간, 주님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업이나 장사도 때를 놓치면 큰일입니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말하는 때를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카이로스는 충분히 차 있는 시간, 충만한 시간을 말합니다.

오늘

 

성 아퀴나스는 성서 귀절을 읽고 회개하여 새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아오스딩은 마니교에 빠져서 행복은 오직 쾌락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온갖 충격적인 생활을 다 했지만 그럴수록 삶은 허전하고 메마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몸부림 끝에 어느날 목소리를 듣습니다.

"네 앞에 있는 성서를 펼쳐라~'

그 자리에서 성서를 펼쳤더니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들었던 

<로마서 13장 13절>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번민과 눈물 속에 몹시 괴로워하며 살아가던 아오스딩은 찾던 것을 찾았고

만나고자 하는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구원의 때를 만난 겁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기울어져가는 중세의 교회를 청빈의 삶으로 일으켰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난때는 수도회를 만들어 수도자를 양성하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3년, 장님으로 살던 때였습니다.

빛으로 세상을 본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마지막 축복입니다,

 

 

장님으로 살 때 지복직관의 경지, 바로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시력을 잃고 어둠 속에 살면서 만든 노래가 '태양의 찬가'입니다.

 

빛을 잃고 살던 마지막 삼년은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어떤 수도자의 삶보다

기쁘고 행복했으며 하느님과 일치의 삶을 살았습니다.

마지막 죽을 때는 알몸으로 들판에 누워서

'내 영혼을 바칩니다' 하면서 대지에 자신의 영혼을 바칩니다.

 

철학자이면서 신앙가였던 파스칼은 하느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양피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양복 안단 주머니 속에 항상 넣고 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나 파스칼의 하느님을 몇 년, 몇 월, 며칠에 만났다~‘

우리는 흩어져 가는 신앙을 다잡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하느님을 만난 때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하느님을 만나는 때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 김신부도, 사제들도 하느님을 만난 때가 다 있습니다.

 

대림절은 일 년을 반성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성장의 시기요, 은혜의 시기입니다.

 

그분이 직접 목수가 되어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워 집을 지어주셔야 합니다.

우리들의 집은 세월이 지나면 다 모래위에 지은 집이 됩니다.

내가 쌓은 부귀, 지위...... 이 모든 것들은 모래위에 세워져 다 허물어집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지어주셔야 합니다.

하느님 계산은 우리의 계산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느님은 양심, 말씀, 십자가의 고통, 사건이라고 하는 주파수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순절, 성탄절......등으로 나누지만 예수님은 오늘 아침에도, 미사때도,

잠시 후 성체를 통해서 여러분 안에 탄생하십니다.

 

내가 원한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때 불쑥 찾아오십니다.

그분이 언제 오시더라도 단정하게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원양어선을 탔던 어느 자매의 남편이 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일년 만에 오는 남편을 맞이할 준비로 집안 청소며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도 장만하고 미장원 가서 머리도 하고...... 이것저것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몇 개월 전에 같은 원양어선 타는 가족과

나이트클럽에 가서 어떤 아저씨를 만났는데 남편보다 멋졌어~

그래서 두 번인가 만났을 때 남편이 온다는 전갈을 받았던 거예요.

‘아, 나를 어둡게 한 원인이 이거였구나! 이걸 해결해야 되겠다~’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고, 사죄경을 받고, 축복까지 받고 나니까

내 남편이 돌아오는 것이 정말 기쁜거야~

 

대림절은 세상사람들처럼 백화점 앞에 트리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늘 깨어서 내적인 준비를 합시다.

오늘 말씀은 과연 우리가 최후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기도해야 할 때는 기도만 해야합니다.

찬미해야 할 때는 찬미해야 합니다.

 

때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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