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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학 기행] 까마귀 떼가 보호한 성인 상 비센테의 성소

기사입력 2021.08.13. 오전 10:23 최종수정 2021.08.13. 오전 10:24 기사원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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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문학기행-포르투갈〕 리스본 상 비센테 데 포라 성당

상 비센테 데 포라 성당 앞 골목길의 트램



3세기 무렵 스페인 사라고사 인근 후에스카에 비센테라는 청년이 살았다. 아주 성실하고 선량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젊은이였다. 우연히 접한 기독교에 심취한 그는 사라고사의 발레리우스 주교에게서 서품을 받고 성직자가 됐다. 그는 신앙이 깊은 발레리우스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비센테는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한데다 말을 설득력 있게 잘 했다. 그래서 언어 장애에 시달린 발레리우스 대신 곳곳을 다니며 설교를 하거나 주교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우쭐대거나 거만하게 구는 일은 없었다.

성 비센테.



286년 로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즉위했다. 기독교를 싫어했던 그는 로마는 물론 유럽의 여러 식민지에서 기독교 박해를 시작했다. 비센테는 발레리우스와 함께 발렌시아의 총독인 푸블리우스 다키아누스에게 끌려갔다. 총독은 둘을 감옥에 가두고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만약 공개적으로 성경을 불태운다면 자네는 물론 스승인 발레리우스의 목숨도 살려주도록 하지.”

비센테는 고민하지도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를 살려주시려는 마음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불태움으로써 하느님을 불신할 수는 없습니다. 저와 발레리우스 주교님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이라도 감수하고, 어떤 희생이라도 달게 받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비센테의 거절에 화가 난 다키아누스는 부하들을 시켜 그를 고문했다. 고문대에 묶어 팔다리를 비트는가 하면 쇠고리로 살을 찢기도 했다. 상처에는 소금을 뿌렸고,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몸을 지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날카롭게 부순 도자기를 깔아놓은 감옥 바닥에서 기어 다니게 했다.

고통에 시달리던 비센테는 결국 며칠 후 눈을 감고 말았다. 다키아누스는 그나마 양심은 남아 있었던지 나이가 많았던 발레리우스 주교는 고문하지 못하고 풀어주었다.

상 비센테 데 포라 성당



비센테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종교적 신념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본 간수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가 고통스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아주 평화롭고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깨어진 도자기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일부 간수들은 비센테의 행동을 보고 크게 깨달아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다키아누스는 이번에는 비센테의 사체를 들판에 버리라고 했다. 독수리들이 뜯어먹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적이 벌어졌다. 까마귀 수십 마리가 날아오더니 시신에 달려드는 독수리들을 쫓아낸 것이다.

깜짝 놀란 다키아누스는 이번에는 시신을 자루에 넣어 바다에 버리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신이 파도에 밀려 해변에 떠올랐다. 기독교 신도인 한 여성이 총독 몰래 시신을 수습해 집에 숨겨두었다.

상 비센테 데 포라 성당



비센테를 존경하게 된 기독교도들은 그의 사체를 안전한 곳에 옮기기로 했다. 바로 포르투갈의 카보 데 상 비센테였다. 그들은 비센테의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작은 교회를 하나 지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사체를 독수리에게서 지켰던 까마귀들이 그곳까지 따라와 계속 교회 위를 날아다녔다.

전설에 따르면 까마귀들은 이슬람이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했을 때도 비센테의 무덤을 지켰다. 기적 같은 일을 목격한 이슬람은 비록 기독교인이었지만 비센테를 우러러보게 됐다. 당시 이슬람 지리학자였던 알 이드리시는 그의 무덤을 ‘까마귀의 교회’라고 부르기도 했다.

상 비센테 데 포라 성당



세월이 많이 흘러 아퐁수 1세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리스본을 수복했다. 그는 카보 데 상 비센테에 있는 비센테의 무덤이 소홀히 관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병사들을 그곳에 보내 성인의 유해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당장 성 비센테의 유해를 리스본으로 모셔오도록 하라. 리스본에 있는 성당을 그에게 헌정하도록 하겠다.”

아퐁수 1세는 1173년 비센테의 유해를 발굴해 배로 리스본까지 실어왔다. 그의 무덤을 지킨 까마귀들은 이때도 리스본까지 배를 따라가며 유해를 지켰다고 한다. 그의 유해가 리스본대성당에 안치된 이후에야 까마귀들은 마침내 임무를 다 마쳤다는 듯 어디론가 사라졌다.

리스본 시 문장.



리스본의 시 문장(紋章)에는 바다에 떠 있는 배의 선수와 선미에 까마귀 두 마리가 마주보며 앉아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비센테를 리스본으로 모셔온 장면을 형상화한 문장인 것이다.

아퐁수 1세는 1146년에 지은 성당에 ‘상 비센테 데 포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상 비센테 데 포라 성당으로 불리는 곳이다. 아퐁수 1세가 처음 지은 성당은 나중에 허물어져 없어졌다. 현재 성당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1582~1629년 사이에 새로 지은 것이다.

상 비센테 데 포라 성당.


 

남태우 기자(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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