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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1 22:37

어느 가게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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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서오릉에서 항동 넘어가는 고개 넘은 길목에
작은 구멍가게 하나 있다.

인가라야 대여섯. 인근은 온통 밭이라 오가는 인적도 드문데
해 저무는 저녁을 홀로 불 밝혀 지키고 있다.

모를 일이다. 무슨 장사가 될련지..
종일 가게 옆에 볼썽사납게 자란 미루나무에선 까치나 우짖고
마른 풀숲에선 바람이 서각 서각 봄 온다고 까불대는 소리만이 있을 법한데
아주머니 혼자서 연탄난로 지피고 앉아 있다.

아이들이 쓰다만 공책 찢어 붙였는지 줄쳐진 종이엔
누가 사갈까 싶은 -시골김 900원- 글씨마저도 삐틀삐틀.
그나마 꽃샘바람에 춤추듯 팔랑거리고 있다.

그런데 이 작은 구멍가게가 내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그리움에 가게에서 나는 먼지 더부룩하게 쌓인
"에이스" 과자 하나를 사야만 했다.

문득 어느 겨울 어느 날 강원도 영월에서
어찌하다 길 잃고 굽이굽이 산길 돌다보니 산골 마을에서 만났던
한 가게가 생각난다.

마을 앞엔 작은 내가 흐르고
제법 국민학교도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었지만
여느 시골 동내가 다 그렇듯이 이제는 퇴락할 대로 퇴락하고
그나마 새로난 신작로 뒤편으로 밀려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난 그 곳에서 일제 강점기나 있을법한 전방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그렇게 생긴 것을 전방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말일게다.

가게를 지을 때 쯤이야 물 잘빠지고
사람 많이 다니는 요지에다 지었겠지만
흐르는 세월만큼, 사람이 다니고 우마차가 다니고
세월이 또 변해 차가 다니니
자연히 땅도 닳을 법 한데 어찌된 일인지 길거리가 더 높아져
그 가게에 들어가려면
두서너 계단을 내려가야만, 그래서 그 가게 처마가 내 어께만치로 보였다.

기와는 눈비에 닳고 닳아서 금빛 모래가 보이고
녹슬어 뚫어진 양철 간판 모서리엔 간판보다 더 썩어 빠진 나무가
거름 빛이 되어 있었다.
겨울이라 그렇지 필시 여름엔 지붕엔 풀이
가득 자라 있었을 게다.
그런데 그 가게가 얼마나 정겹던지…….
한참을 보았다.
나하고는 아무런 인연 없음에도 가면서도 되돌아보고 또 봤다.

나는 서울에서 자라서 고향이 없다.
아니 처음에는 있었는데 재개발로 집은 헐리고 길은 불도저에 밀려
고향 떠난 이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가봐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것이다.
들리는 소문엔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하드만
그것도 풍문으로 들었다.

그래서 사람은 본디 귀소 본능이 있어 그런지
잃어버린 고향대신 이런 들녘을 내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겨울이면 별이 쏟아지고 오리온성좌가 밤하늘 지키며
여름이면 풀벌레 소리에 잠자던 새들도 잠을 깨는 그런 곳.

한적한 시골이라서 이 나라가 온통 도시가 되지 않는 한
내 사는 평생은 산과 들녘만큼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때와 장소는 달라도 그리움은 늘 한결 같은 것인지
고향의 정을 더욱 붙이려 그러한 것인지

저녁나절 서오릉 넘어 가면서
고향 마을에나 있을 법한 가게가 발길 붙잡더니
가지고 다니던 생수 하나와 에이스 과자 모두 비우고 나니
비로소 내 발목을 놓는다…….

-----------
서오릉은 서울 은평구에서 일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조선 왕릉입니다
한 십여전에 쓴 일기장에서 꺼내
올립니다.
사진은 분위기가 비슷해 다른 곳에서 들고 온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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