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선 열차를 타고

by 이상훈(요셉) posted Jul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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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금 한창 꽃 핀, 능소화 꽃빛처럼
볼그레한 뺨을 가졌던 스무 몇 살 늦가을이었나 보다  

지방 출장일이 잦았던 나로서는
시간에 맞춰, 고속버스든지 기차든지 짐짝처럼 몸을 싣고
식사로는 비스킷과 깐포도 통조림 그리고 한 컵의 물이 다였지만
지금도 그때 그 풍경이 눈을 감으면
선하게 떠오르는 황홀한 추억이 하나 있는데

너무나 오래 전의 일이라 지금 그 곳이 어딘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쩌면 진주에서 마산 가는 열차였지 않나 싶다
아니면 마산에서 진주를 갔을까?...

노을이 지려고 그랬을까
서산마루에 걸린 구름도 반쯤은 붉게 물든 시간
나는 경전선 열차를 타고 어느 시골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턱 괴고 바라보는 차창 너머로
기차가 달리는 속도에 따라
전봇대에 걸린 전깃줄이 파도처럼 물결치고
늦가을이라  기찻길옆 논에는 추수가 끝나 볏짚을 마치 오막살이집처럼
옹기종기 논 한편에 세워 놓았고
이따금씩 만나는 멀리 보이는 초가집들에는
그것이 제 집 식구인양 감나무 한 두 그루 담장 곁에 서 있는데
나뭇잎은 거의 떨어지고
붉은 감만 높다란 가지 끝에 메달려
초가지붕 위로 얼굴 내민 굴뚝에서 피어나는
하얀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남지 않은 단풍 든 감나무 잎이 그토록 예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어느 사이 기차에 탄 승객도 꾸벅 꾸벅 졸음이 왔던지
잠잠해 지는 고즈넉한 시간
열차는 초저녁 밤, 철길을 달리는데
간간이 보이는 외딴 집 흐릿한 불빛 너머,높고 낮은 산과 들이 잇는 지평선 위로
초저녁별이 뜨고
어느 간이역에 도착하면 그때서야 기차 안이 잠시 소란해 졌다가
다시 덜컹거리고 출발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떳던 눈을 감던 그때는 기차 안의 불빛도 참 흐렸었다.

세월은 어느 덧 미루나무 가지끝에 머문 구름 떠나듯 흘러
머리카락은 성겨지고 세수할 때 마다
아무리 비누칠을 하고 박박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주름살이 켜켜한 때
이것이 어찌 나만의 일이던가
.............

주일 미사를 마치고
마음 맞는 교우들과 다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디서 어디까지 라는 것도 없다.
무작정 기차를 타고 볼 일이다.

부곡, 남지 많은 교우들과 함께 가자했지만 나름의 사정때문에
갈 수 있는 몇 분 중
즉석에서 총무도 정하고 여행 도우미도 정했다
마산 중리역 기찻길 옆에선 교우들 표정이 참 천진난만하다
무엇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주님의 딸과 아들들.

어디론가 기차를 타고 간다는 설렘 속에는
저마다 예쁜 풍선을 하나씩 가슴에 담고 한 손에는 아무도 안 보이게 아카시아 한줄기 잎을 들고 떠난다.
덜컹거리는 기차가 간이역에 설 때마다 한 잎씩 떼어 놓고
마지막 한 잎이 남았을 때 우린 하동 역에 도착했다.

섬진강변 솔숲 벤치에 앉아 모니카 자매님 아가씨때 이야기도 듣고
깜찍하고 귀염둥이 안나 자매님 해 맑은 웃음사이로
율리아나 자매님의 효소이야기도 듣고
반쯤은 엉터리인 내 뻥에도 일부러 속아주는 참 예쁜 사람들
섬진강도 좋고 소나무도 좋았지만 그보다 이런 행복한 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고
이렇게 좋은 교우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그것이 더 행복했다.

시간이 되어 다시 하동 역으로 와 잠시 기차를 기다리는 사이
철로변 커다란 벚나무마다 무수히 구멍 뚫린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살들
그걸 찾아 낸 혜안도 놀랍고 그 정서에 함께 즐거워하며
벌레 먹은 잎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성화한다는 걸 우린 알았다.

내 옆자리에 아주 멋쟁이 촌 할머니가 앉으셔서 그 분이 때마침 고향 분을 만나
나누는 이야기의 정겨움도 좋았고
갈 때는 마주 앉아 갔지만 돌아오는 길은 좌석 때문에 따로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이 좋고 멋있는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을 향해 가만히 묵주기도를 드리며 왔는데
알고 보니 모두 한마음으로 묵주기도 드리며 왔단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칠원 장암공소에 들렸다
모두 한자리에 앉아 오늘의 여행에 함께 동행해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
성모님 앞 벤치에 앉아 김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모두 참 고맙다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 서로를 사랑할 줄 아는 교우들이 있어 참 행복하다
그 분들을 볼 때 한분 한분 주님의 모습이
그 분들 눈동자 속에 들어 있고
성모님의 자애로움이 미소 속에 있음에 더 없이 행복하다

.........

우리 모두 ,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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