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by 이상훈(요셉) posted Jul 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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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가끔은 궁금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신문도 가장 중요한 기사를 1면에 싣기 마련이고
기타 시집이나 문예지, 어떤 책이든지 그 표지나 책을 펼쳐 든 첫 부분은  
책의 가장 대표적인 제목이나 글을 싣어
표지만 보고도 대충 그 안의 내용을 어림짐작 할 수 있고
누구나 책을 사면 그 책 끝까지 한꺼번에 다 읽는 경우가 드물어
도중에 덮는다 해도
꼭 이 내용만큼은 독자의 시선을 잡으려고 신문이나 잡지사에서
가장 고심하고 노력하는 부분 중의 하나 인 것이라는 것은
말을 안 해도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사실 저는 매주 우리 주보를 받아들곤 이해 안 가는게 있었어요.
그 첫면이 제겐 참 난해했거든요

아주 철학적인 거라서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고  
또 어떤 것은 무슨 말인지 선문답 같아서 갸우뚱하다가
미사 끝에 신부님께서 공지하실 때 꺼내 펼쳐보곤 했지요

나름 차라리 오늘 미사참례의 순서라든지
미사중 봉독할 성경말씀이나 성가 몇 번 곡등 알림 글이 적혀 있다면
그 활용도가 높을 텐데

왜 우리 신부님께서는 중요한 첫 면에 그 어려운 철학적인 말씀을 올리시어
우리 신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는 것인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주보를 받아들면 첫 면보다는 뒷면을 먼저 보게 되었는데
그러던 성령강림 대축일 날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첫 면을 대충 흩어 보고 넘기려는데  
어느 한 글이 저의 눈을 꼭 붙잡고 놓질 않았습니다

그 순간 무의식중에 성호를 긋고 "와 !!! 우리 신부님 !!"
그건 다름 아닌 죄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그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말씀의 표현을 이제껏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느낌의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제게 만큼은 그랬습니다.

저는 죄가 많아 아마도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을겁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날 저는 신부님의 생각을 다는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날의 성경말씀도 성가 곡의 알림도 중요하겠지만
그건 어차피 미사 참례 중에 아는 것이고
그 이후 그 순서를 다시 주보를 꺼내 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나의 형식적인 주보가 되기 보다는
하지만 그 주보에 실린 어렵다고 느껴졌던 많은 말씀 중에 단 하나라도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하면
저희에겐 큰 울림의 가르침으로
살며 잊히지 않게 와 닿아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 신부님 아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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