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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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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버시”는 부부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2017.01.20 11:04:41

[우리 토박이말의 속살 1]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가시버시’는 요즘 널리 쓰이지 않는 낱말이다. 그런데 누리집에 가보면 이것을 두고 말들이 없지 않다. 우리 토박이말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주 쓰지 않는 토박이말이 이야깃거리가 되어서 그런가 보다. 이것은 참으로 반가운 노릇이다. 그런데 누리집에서 오가는 말들이 국어사전의 풀이 때문에 큰 잘못으로 빠지는 듯하다. 낱말의 뜻을 국어사전이 잘못 풀이하면, 그것은 법률의 뜻을 대법원이 잘못 풀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잡을 길이 없다. 그런데 ‘가시버시’가 바로 그런 꼴이 되어 있다.

 

1) 부부.

2) ‘부부’를 속되게 이르는 말.

3)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

 

세 국어사전이 ‘가시버시’를 이렇게 풀이해 놓았는데 모두들 잘못 풀이한 것이다. 우선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낮잡아 이르는 말’이니 하는 것부터 잘못 짚은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상스러운 말과 점잖은 말을 가려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줄곧 받았고, 두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속되다’, ‘낮잡다’는 것은 곧 상스럽다는 뜻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부부’는 점잖은 말이거나 적어도 여느 말인데, ‘가시버시’는 그것을 속되게 이르거나 낮잡아 이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참으로 커다란 우리네 마음의 병집이 감추어져 있다. 국어사전이나 국어 교사가 점잖은 말이니 부지런히 익혀 쓰라고 가르치는 낱말은 모조리 중국서 들여온 한자말이고, 속되고 낮잡고 상스러운 말이니 쓰지 말고 버리라는 낱말은 한결같이 우리 겨레가 만들어 쓰는 토박이말이기 때문이다. ‘똥’은 상스럽지만 ‘분’은 점잖고, ‘논밭’은 상스럽지만 ‘전답’은 점잖고, ‘달걀’은 상스럽지만 ‘계란’은 점잖고, ‘어버이’는 상스럽지만 ‘부모’는 점잖고, ‘집안’은 상스럽지만 ‘가문’은 점잖다고 우리는 줄기차게 가르쳤다. 그래서 우리네 마음 깊은 곳에는 그런 가르침이 똬리를 틀고 앉아서 우리네 말씨를 다스린다.

 

황제의 나라가 끝나고 백성의 나라가 되었다고,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바꾼 지가 벌써 백 년에 가깝다.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의 아들이 대통령을 하고, 재벌이 되고, 대학 총장이 되고, 대법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민주 사회에서도 말씨로 신분을 가릴 것인가? 더구나 우리 선조들이 쓰고 물려준 토박이말은 여태도 상스럽고 속되니 쓰지 말라고 가르치고, 그릇된 생각으로 끌어들인 남의 말은 점잖고 거룩하니 익혀서 즐겨 쓰라고 가르치면서 종살이 정신을 부추겨야 옳은가?

 

 

"가시버시"란 "부부끼리 오순도순"이란 뜻의 어찌씨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가시버시"란 "부부끼리 오순도순"이란 뜻의 어찌씨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가시버시’는 보다시피 ‘가시’와 ‘버시’가 어우러진 말이다. 먼저, ‘가시’는 요즘 말로 ‘아내’다. 자주 쓰지는 않으나 아직도 곳곳에서 입말로 쓰는 ‘각시’라는 말이 바로 ‘가시’다. 그러면 ‘버시’는 무엇인가? 그것은 ‘벗이’다. ‘벗이’는 ‘벗’에 주격 토씨 ‘이’가 붙은 것이 아니고, ‘벗’에 서술격 토씨 ‘이다’의 ‘이’만 붙은 것이다. 그러니까 ‘버시’는 ‘벗’이라는 이름씨에 서술격 토씨의 줄기만 붙여서 어찌씨로 바꾼 낱말이다. 그래서 뜻은 ‘벗이다’에 가장 가깝지만 그대로는 아니고, ‘벗하여’ 또는 ‘벗 삼아’ 또는 ‘벗으로’와 아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가시버시’는 ‘각시를 벗하여’, ‘각시와 벗하여’, ‘각시를 벗 삼아’, ‘각시를 벗으로’ 이런 뜻을 지닌 낱말이다. 조금 더 풀이하면 ‘남편이 아내와 둘이서만 정답게’, ‘부부끼리 오손 도손’ 이런 뜻으로 남들이 부러운 마음을 담아서 쓰는 낱말이다. 그러므로 품사부터 사전들이 말하는 이름씨가 아니라 어찌씨라 해야 옳다. 요즘 사람들이 쓰기 좋아하는 한자말로 하자면 ‘부부 동반으로’라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아름답고 정겨운 낱말이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가시버시 그렇게 차려 입고 나섰는가?”

“한실댁! 가시버시 차려 입고 나선 걸 보니 친정 나들인가 보제?”

 

평소 사이좋게 살아가는 부부가 함께 나타나면 칭찬하느라고 부러움을 담아서 이런 투로 자주 쓰던 낱말이다. 괜히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좋은 낱말을 국어사전부터 속되다느니 낮잡는다느니 하니까, 그런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요즘 젊은이들이 헷갈려 갈피를 잡지 못한다. 사전 하나도 만들지 못한 주제에 이런 말을 하면 코웃음 받을지 모르지만, 젊은이들이 우리 토박이말에 마음이 끌리면 국어사전을 너무 믿지 말고 차라리 가까이 계시는 연세 높은 어른들에게 더러 여쭈어 보면 좋겠다.

 

김수업 명예교수 kse1829@hanmail.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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